2010년 8월 22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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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12일 목요일

디자인 서울에 침을 뱉어라 2-'디자인 서울의 어머니 청계천 '





디자인 서울의 어머니 '청계천 '
디자인 서울에 침을 뱉어라 2에서는 청계천사업과 디자인서울의 연관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디자인 서울이 태어난 배경에는 청계천 복원이라는 국민 대 사기극이 있었다. 
청계천 사업에서 제대로 복원 된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철저한 파괴일 뿐이다. 청계천에서 흐르는 물은 수돗물이고 일제 강점기와 독재개발시대를 견뎌내고 콘크리드 밑에 꿋꿋하게 남아있던 문화재 상당부분이 회복 불가능하게 손상되었다.
하지만 이 사업을 두고 '서울 르네상스'니 하는 말들로 꾸며댔고, 심지어 이 사업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는 데 중점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 것은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 서울'로 명맥이 이어진다. 

디자인 수도 서울 인가 경관 토목공사 수도 인가?

2010년 현재 녹조 관리비용 증가, 물고기 방류, 청계천 상인들의 가든파이브 이전 실패등 여러가지로 서울시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청계천 개발은 첫 한, 두 해 정도는 시민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청계천 개발을 주도하였던 이명박 전 시장은 이 사업을 자신의 시장임기중 최고의 업적으로 내세우며,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청계천 개발은 역사생태계복원이라는 슬로건을 내 세웠는데, 그것은 겉으로만 보아서는 독재개발 시대의 무조건적 성장을 강조했던 토목공사와는 차별성이 있는 소프트 개발사업처럼 보였다.
 차기 당선된 서울시장은 청계천 사업과 유사한 소프트한 개발 사업을 여러 개 기획하며, 급기야 서울시 행정의 핵심으로 디자인을 내 걸고, 2010년 디자인 수도를 위해 2007년 부터 야심차게 준비해왔다. 그런데 그 디자인이라는 것의 의미가 현 시대의 디자인이 담고 있는 의미의 영역, 즉 비 가시적, 비 물리적이고 상호 소통적인 영역보다는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60-70년대식의 산업, 제품디자인 그리고 도시경관 디자인의 의미에 한정 되어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래는 디자인서울 추진단이 내놓은 사업 방향이다.

 ‘천혜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살린 건강한 생태도시,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에 맥이 닿아 있는 품격 있는 문화도시, 세계 첨단의 IT인프라를 활용한 역동적인 첨단도시, 수준높은 교육을 받은 천만 시민에 의한 지식기반의 세계도시’ 가 ‘디자인 서울’의 비전이다. 서울시는 SOFT SEOUL 이라는 디자인 서울의 비전아래, 자연성에 기초하고 문화를 기반으로 서울의 도시경관을 변화시키는 계획으로 디자인서울을 추진하고있다.’

기본 목표에서도 명확히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이 사업의 목표는 결국  서울의 도시경관을 바꾸는 것이다. 디자인 사업단의 주요 핵심 사업이 한강 르네상스, 동대문 디자인 파크 건설등 공원 조성이나 문화의 거리조성이라는 점은 이 기본 방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디자인 사업의 슬로건은 소프트 서울(Soft Seoul)’이지만 사실상 내용은 하드 서울(Hard Seoul)’인 것이다. 이것은 청계천 개발의 홍보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 청계천 사업의 생태와 문화재를 복원하겠다고 홍보하였고, 디자인 서울은 생태 대신에 문화라는 좋은 내용을 삽입했다. 두 사업의 실체는 60-70년대 독재시대와 별 다를바 없는 토목 개발사업이지만  ‘문화, 생태, 복원등의 좋은 이름을 덧씌워,  한 눈에 토목개발이라는 것을 알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

디자인 서울의 가장 중점적 사업은 동대문 디자인 파크 플라자건립으로써 2007년 디자인 수도 사업 발표시 2010년 가을에 열리는 디자인 올림픽행사에 맞추어 개장 하기로 했다. 지명 설계를 거쳐 세계적인 여류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환유의 풍경을 선정하였다.


동대문 운동장을 철거한다는 소식에 얼마 남지 않은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려는 사람들, 우리나라 아마추어 야구의 산 증인이자 아마추어 야구단이 유일하게 연습하고 경기할 수 있는 동대문 운동장을 지키려는 사람들, 동대문 야구장의 고교야구 추억에 아쉬워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30년 넘게 장사를 해온 노점상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사라진 동대문 운동장 2007)

특히 풍물시장 상인들의 경우 청계천 개발로 수십년 된 상권을 며칠 만에 잃어 버리고 풍물시장으로 강제이주 된지 겨우 4년도 채 안되는 상황이었다. 상인들은 풍물시장을 노점상 난민수용소라고 불렀다. 풍물시장의 시설은 열악했고, 여기 저기 흩어져 다양한 물건들을 팔 던 사람들이 한 데 억지로 모여있는 것은 흥미로움 만들지 못했고 따라서 사람들의 발길도 뜸했다. 그나마 4년의 세월이 지나 겨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쫓겨 새로 시작해야하는 상황에 분노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한 상인은 우리는 이리차면 이리가고 저리차면 저리가는 돌맹이가 아니다.” 라고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결국 상인들은 시내와 떨어진 성동기계공고 너머로 다시 강제 이전하게 된다.
 

(폐허가 된 풍물시장 2008년)


청계천 개발의 악몽

청계천 개발 때의 풍경이 4년 만에 그대로 동대문 운동장에 반복되고 있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사업은 디자인 서울의 어머니 격이다.
청계천 복원 사업단을 설립하고 문화재 복원’, ‘생태복원을 위해 청계천 복원을 준비하고 발표한지 6개월 만인 2003 8월에 삼일 고가 도로를 기습 철거했다

2003년 청계 고가 철거 당시



아직 노점상, 주변상가의 보상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고 600년 동안 만들어진 청계천을 단 2년만에 복원한다는 계획은 누가봐도 무리한 계획이었다. 강제 철거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청계천 위에서 장사를 하던 많은 소상인들과 노점상들에 대한 뾰족한 대책 마련이 없이 공사가 강행되는 점, 진정한 하천 복원이 아니라 자양정수장의 정수된 수돗물과 근처 지하철의 지하수를 모터로 끌어 들이는 점, 개천의 모래가 자정작용하고 지하수의 유입이 자유로운 원래의 개천 복원이 아닌  방수코트로 바닥을 바르고 석재를 쌓은 거대 어항을 만드는 것에 대해 큰 반발이 있었지만 서울시는 공사를 강행하고 바닥을 파헤쳤다.
그런데 공사를 진행한지 석 달 후에 다른 큰 문제가 발생했다예상보다 너무 많은 문화재가 발견 된 것이다. 

(청계천의 단면- mbc 화면 캡쳐 )


(2003년 발굴된 양안석축)
 
(2003년 발견된 수표교터)



만약 발견된 문화재를 제대로 복원한다면, 시장 임기내에 사업을 끝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청계천 사업단의 결정은 단호하고 신속했다. 예정대로 조경 사업을 진행, 완공한 후에 문화재를 그 위에 끼워 넣기로 한 것이었다문화재 복원이라는 목적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조경 설계와 맞지 않는 다는 이유등으로 광통교는 원래 자리에서 155m 가 옮겨졌고  밑기둥이 15cm 정도 잘려나갔으며, 적어도 250년된 양안 석축은 공장에서 갓 나온 새 돌에 맞추어져 잘라졌다. 2003년 발견된 100m 가량의 석축의 약 48m가 행방이 묘연하였고, 오간수문은 중랑구 하수 종말 처리장에 방치되었다. 지금 오간수문터에는 모양만 흉내낸 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청계천 복원의 핵심이었던 수표교 이전은 유야무야 없던 일이 되어버려 아직도 장충단공원에 자리하고있다


청계천 사업에서 제대로 복원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은 되려 철저한 파괴였다



3편에서 계속-
디자인 서울에 침을 뱉어라 3편  '청계천의 오늘'에서 청계천에서 벌어진 참극을 좀 더 샅샅이 살펴 보기로 한다.

2010년 6월 7일 월요일

주간한국 기사

주간한국 >커버스토리
"도시의 주인과 정체성 찾는 시도"
'리슨 투 더 시티' 프로젝트 박은선 작가
서울 재래시장과 재개발 지역 투어… 9월 영국 리버풀서도 진행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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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선 작가의 테마는 도시와 건축이다. 삶과 문화가 태어나고 이어지는 바탕으로 도시와 건축을 조명해 왔다.

그의 작업에는 초국적 자본에 의해 급속하게 변하고 획일적으로 개발되는 도시 환경 속에서 인간답고 문화적으로 사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작년부터는 그 연장선에서 '어반 드로잉스'라는 계간지를 출간하고 있다. 1호에는 도시의 주거 문제를, 5월에 나온 2호에서는 4대강 개발의 문제를 다루었다.

'리슨 투더 시티 서울 투어 프로젝트'의 취지도 같은 맥락에 있다. 박은선 작가는 서울의 재래시장과 재개발 지역, 오늘날 도시 문제가 첨예하고도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는 이 프로젝트를 지율 스님의 낙동강 순례에 비유했다.

"기록되지 않고, 사라지기 직전인 문화와 역사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야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 알게 되니까요. 지율 스님이 낙동강 순례를 진행하시는 이유와 비슷해요. 강에 직접 와본 이들이 적어서 4대강 개발의 영향이 사회적으로 실감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죠."

이는 도시가 정부나 일부 자본의 것이 아닌,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것임을 일깨우는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나아가 서울의 특성과 정체성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보자는 제안이다.

9월에는 공동 작업하는 영국 작가들과 영국 리버풀에서 같은 컨셉트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영국은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국가입니다. 한국과 가장 비슷한 환경이죠. 그곳에서의 프로젝트는 한국을 비추어 인식할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지난 5월25일 박은선 작가를 만나 프로젝트의 자세한 내용을 물었다.

서울과 리버풀에서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몇 해 전 영국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작은 상점이 거의 없다는 점에 놀랐다. 대형마트가 득세하고 있더라. 그런데 한국에 돌아왔을 때 몇 년 사이 영국과 같은 풍경이 되어 있었다. 대형마트의 브랜드까지 같았다. 도시가 익명화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의 개성을 어떻게 유지할지 의문이 들었다. 서울에서 추진되는 34개 뉴타운이 완성되면 서울의 정체성은 없어질지도 모른다.

이번 프로젝트 코스도 재개발 지역 중심이다.

-역사가 있는 4대문 안 '원조 서울'에 초점을 맞췄다. 갈등이 살아 있는 곳이다. 이곳들의 앞날은 청계천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청계천은 도심에 위치한 '공업 생산라인 네트워크'였다. 이렇게 특이한 곳이 문화 복원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졌는데, 정작 현재 청계천은 옛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청계천 상인들은 갈 곳을 잃었는데, 상권 조성을 위해 만들어진 대형 상가는 불황이다. 이런 것은 누구도 이기지 못하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당동 중앙시장에서 황학동·동묘의 구제벼룩시장을 거쳐 신축된 아파트로 가는 코스가 있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서 같은 인상을 받았다. 아파트를 세울 때는 주변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을 텐데, 정작 그 근처 상가들은 텅텅 비어 있다.

서울, 리버풀 프로젝트 결과를 모아 전시를 연다고 들었다.

-9월에는 영국 스태틱 갤러리, 11월에는 서울 이태원 공간해밀톤에서 <도시교환전>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한다. 여기에는 양 도시가 서로의 이미지를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프로젝트도 포함된다. 예를 들면 서울 사람들은 리버풀 하면 축구나 비틀즈만 떠올린다. 도시 이름이 '강river'과 동음이의어라서 그런지 낭만적인 곳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리버풀은 쇠락한 공업 지역으로 영국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중 하나다. 이런 상상을 바탕으로 두 도시의 모형을 만들어 전시할 계획이다.

입력시간 : 2010/06/02 10:47:38